이국종 교수는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대학교수입니다.
중증 외상분야 및 외상후 후유증, 총상치료 부문에서 한국 최고 권위자이자 2018년 이후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국가대표 급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국종 교수도 처음에는 의사가 꿈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이국종 교수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진짜 이유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청년 이국종,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저의 아버지는 6.25 직후 북한과의 교전 상황에서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 국가 유공자였습니다.
친구들이 ‘병X의 아들’이라 놀리는 게 두려워서 중학교 때까지 아무에게도 국가 유공자의 가족이란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집안은 늘 가난했습니다.
가끔 술을 마신 아버지는 제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셨습니다.
중학교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습니다.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을 찾았는데 국가 유공자 의료 복지카드를 내밀자 간호사들의 반응이 싸늘했습니다.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고 몇몇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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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냉랭하고 비정한 곳인지 이 때 잘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아픈 사람에겐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병원을 전전하던 중 외과의사 이학산 선생님께서 제가 내민 카드를 보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저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를 비롯해 형편이 어려운 분들께 거의 돈을 받지 않고 치료를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굉장히 어린 나이였지만 마음 속 깊이 감사함을 느꼈고 그 분들과 같은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대에 진학했고 의대 4년을 마치고 나니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워 졌습니다.
더이상 의사의 길을 갈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 제적 신청을 하고 2주 뒤 해군 갑판병으로 입대했습니다.
여기서 만난 상사와 전우들은 제가 의사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좋은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이 강조하신 게 바로 뱃사람의 정신이었습니다.
“뱃사람은 어떤 큰 파도도 헤쳐나가며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고 “소금기와 기름때에 찌든 군복은 값진 것” 이라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학업을 계속 이어가길 권유하셨습니다.
아마 해군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의사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국종 교슈가 진짜 의사가 될 수 있었떤 이유는 힘들 때 들은 주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였습니다.